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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

새벽의 단편

by 선임1호 2020. 3. 22.

새벽의 단편

 

 

어느 긴 밤

좋아하는 편지지를 앞에 놓고 안았던

그때는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그 오래된 시절이었다는 말은

그 오래된 시간을 부를 수도 

다시금 사용할 수도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누구도 편지를 부치지 않는 동안

건물은 헐리고 꽃밭이 줄고

습관은 습관이 되고

 

아무도 읽어주지 않거나

어딘가에서 분실되고 말지도 모를 편지를 쓰는

그 새벽에 새들이 울면

두 눈 가득 침이 고이던 시절

 

감히 만나자는 말을 적어넣고 풀치을 잃었습니다

편지지라는 말이 사라져버린 세계의 빈 봉투처럼

돌아볼 단편의 증거가 없다는 것은

 

접지 않았으니

펼쳐야 할 것도 

봉하지 않았으니 열어야 할 세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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