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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

신도 죄를 짓고 싶은 저녁이다.

by 선임1호 2020. 3. 11.

신도 죄를 짓고 싶은 저녁이다.

 

저녁이 오는 동안 혀끝이 쓰라리다

후박나무에 비가 내렸다

쓰라리다, 라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혀끝은 쓰라리고

 

하루, 

어쩌면 온종일이라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쓰라리지 않기 위해

울음보다 가볍다는 소리까지 몽땅 토해냈는데

후박나무가 젖는다

 

혀끝에 박혀 있는 저녁

 

어깨를 굽힌 사람이나 턱을 치켜든 사람이나

저녁에 닿는 일은 쓰라림에 닿는 일

 

후박나무는 후박나무답게 저녁을 맞이하고

저녁에는 사랑해야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므로

견습생 같은 삶이라도 어설퍼서는 안 된다

 

잠시 비를 긋는 심정으로 후박나무에 기대면

저녁으로 모여든 빗물이

어깨에 스미고

 

신의 허락 없이는 죄를 지을 수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땅에 묻고 돌아온 사람만큼은

신도 외명하고 싶은 저녁

 

후박나무에서 떨어져 내린 빗물이 신의 혀끝에 박힌다

쓰라리다

 

인간이 눈 감는 시간을 기다려 신도 죄를 짓고 싶은 저녁이다

 


문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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